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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장난삼아 만졌는데, 개구리는 뻗어

등록 : 2012.11.09 20:52 수정 : 2012.11.10 15:32   한겨레신문

지난달 28일 서울 신당동의 곤충파충류 생태체험학교에서 어린이들이 팬더마우스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팬더마우스들이 작은 집에 들어가 숨어 있으면, 팬더마우스를 보고 싶어하는 어린이들은 집을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기고, 노출된 팬더마우스들이 다시 집을 찾아들어가는 상황이 반복됐다.

[토요판] 생명
동물체험은 교육인가

백화점이나 지역 축제에서 열리는 동물체험전 한번 정도는 가봤거나 들어보셨을 겁니다. 최근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이런 체험전이 ‘배달’되기도 하는데요. 모두 환경을 보호하고 동물을 사랑하자는 구호 아래 펼쳐집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바람직한 생명교육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동물원 감시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과 함께하는 동물원 연작 보도 두번째는 우후죽순 늘어나는 체험동물원과 이동동물원 이야기입니다.

서울시 신당동 지하에는 ‘동물원’이 있다. 장수풍뎅이에서부터 골든햄스터, 기니피그, 큰거북 등 수백종의 동물이 산다. 어린이들을 위한 상설 동물체험전이 열리는 곳으로, 서울 지역 학부모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28일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을 위한 행동’과 ‘곤충파충류 생태체험학교’를 방문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생태체험학교의 교육적 기능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코너는 무당개구리 전시관이었다.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의 수조에는 무당개구리 수십 마리가 앉아 있었다. 시선을 끈 건 옆에 비치된 철제 뜰채였다. 뜰채로 무당개구리를 건져 관찰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여섯살 어린이들은 미숙하기 그지없었다. 뜰채로 개구리 다리를 치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개구리가 죽었어요!”

북방산개구리 케이지 앞에 있던 한 어린이가 소리쳤다. 직원이 달려와 흙 속에 묻힌 북방산개구리 한 마리를 끄집어냈다. 썩은 내가 코끝을 스쳤다. 어린이가 말했다. “흙 속에 발이 튀어나왔어요. 만져보니까 죽어 있었어요.”

어린이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동물을 가까이서 보고, 도구를 이용해 잡고, 손으로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더마우스 손에 올려놓기, 목에 뱀 걸기, 큰거북 만져보기, 페럿(유럽긴털족제비의 일종)의 촉감 느껴보기 등 여러 종을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이 진행된다. 동물의 복지를 위해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늘리자는 내용과 기후변화의 폐해를 알리는 교육도 진행된다. 팬더마우스 등 일부 소동물은 판매된다.

무당개구리 체험은 뜰채로 잡아 관찰하도록 했으나, 종종 부주의한 어린이들이 휘두르는 뜰채에 치이기도 했다.
잡고 걸어보고 만져보며
동물과 친해질 수 있다지만
물건 대하듯 생명경시 우려
어린이들 미숙한 행동으로
다치거나 죽는 경우까지

유치원 등에 동물 공급하는
‘이동동물원’도 급성장중
원숭이·뱀 등 두시간 40만원
‘미니 말’ 추가하면 50만원

동물보호단체는 동물을 만지고 잡는 동물체험전은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동물을 사소한 물건으로 대하는 태도를 은연중에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경옥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는 이곳의 동물은 ‘동물 일반’을 대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경카이만악어는 가로세로 각 1미터의 전시관에서 죽은 것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야생에서 파충류는 저렇게 멍하게 가만히 있지 않아요. 야생동물이 사라져가는 실제 현실과 달리 동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우려가 있어요. 이를테면 야생 조류 관찰 프로그램에선 한 시간 동안 걸어서 새 몇 마리를 보죠. 그렇게 힘들여 동물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 자체가 양질의 교육이지요.”

29일 이 업체를 다시 방문해 김홍중 대표를 만났다. 그는 전북 부안에서 곤충체험장을 운영하다 2010년 신당동에서 이 체험관의 문을 열었다.

“생명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어요. 동물을 키워 본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애들은 동물에 대한 태도가 달라요. 동물을 체험한 아이들은 동물에 대한 배려가 생깁니다. 다만 동물보호단체가 지적하는 문제는 시스템적으로 강화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을 찾는 부모들의 생각도 엇갈린다. 대부분은 동물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들을 보고 만족하고 돌아가지만, 김아무개(40)씨처럼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엄마도 있다.

“지난 3일 갔는데 동물들이 방치된 느낌이었어요. 팬더마우스가 자꾸 숨는데 만지고…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빼서 던지는데 제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조심해서 다루라는 안내판이 있긴 한데, 아이들이 알겠어요? 케이지마다 전문 사육사가 붙어서 소중하게 다루는 법을 알려줘야죠.”

29일 골든햄스터 케이지에서 두 마리가 한 마리를 갉아먹는 장면이 목격됐다. 원래 작은 케이지 안에 골든햄스터 세 마리가 있었다. 한 마리는 이미 죽어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기자가 먼저 발견해 체험학습을 하러 온 초등학생들은 보지 못했다. 햄스터는 종종 카니발리즘(동족포식)이 관찰되는 동물이다. 권태억 서울 한성동물병원장은 “좁은 공간이나 은신처가 없는,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환경에서 햄스터는 다른 개체를 공격한다. 햄스터를 사육할 때는 이런 카니발리즘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한 마리씩 따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악어 만져보기 체험을 하고 있다.
동물체험전은 최근 붐을 이루고 있다. 햄스터 등 소동물과 곤충·파충류를 중심으로 하는 상설전시관에 이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그리고 지역 축제나 백화점 특별전에 동물을 공급하는 ‘이동동물원’도 급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동물 체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동물 전시뿐만 아니라 만지기, 타기 등의 체험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한겨레>가 업계에 문의한 결과, 대다수 업체가 한 시간당 20만원 안팎을 받고 교육기관과 지역 축제에 ‘동물체험 출장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ㄱ업체는 하루 두 시간에 40만원을 받고 원숭이·뱀·스컹크 등 12종 20마리에 대해 출장 전시를 해준다. 생태 설명, 만져보기, 사진 찍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동동물원에서 최근 인기를 끄는 종은 교배로 탄생된 키 작은 말 ‘미니 말’이다. 이 업체는 옵션으로 미니 말을 추가하면 50만원, 마차까지 추가해 어린이들이 타도록 하면 80만원이라고 선전했다. ㄴ업체는 하루 5시간 90만원에 햄스터·뱀 만져보기를 포함한 동물 20종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큰 규모의 이동동물원은 전국에 5개 안팎이고, 소규모 상설 곤충·파충류 전시관까지 합치면 이런 동물원은 수십 곳에 이른다.

동물체험전은 인간이 동물을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느냐는 논쟁의 지평을 보여준다. 사소한 물건 대하듯 하는 형태의 체험전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에서부터 동물복지를 고려해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는 신중론, 동물과 친숙해질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다는 주장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논란 속의 동물체험전을 규제하는 소관 부서나 법 조항은 없는 실정이다. △동물 공급 및 처리 △동물 스트레스를 줄이는 사육기준 △최소 관리 인원 등 기준도 없다. 전경옥 대표는 “열대에서 온대까지 다양한 동물을 전시하면서 상근 수의사 한 명 없다는 것은 문제”라며 “엄격한 설립 심사기준이 있어야 하며 정기적으로 관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