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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포럼》

최근 들어 동물을 매개로 하는 조류독감, 광우병, 돼지콜레라, 사스 등이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면서 축산 농가는 물론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고, 건강까지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더구나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에서는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동물병원을 찾아오기도 한다.

푸젠A형 독감이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해 학교가 휴교를 하고, 백신마저 바닥나 백신 주사를 맞으려는 행렬이 병원 앞에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독감 백신이 모자라서 접종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불경기에 추위까지 겹쳐서 불안해하는 시점에 충북 음성에서 발생한 홍콩조류독감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조류독감은 닭, 칠면조, 오리와 야생 조류 등 여러 종류의 조류에 감염되는 질병이다. 고병원성의 경우는 전파가 빠르고 세계적으로 많은 해를 입히기 때문에 각국에서는 엄청난 투자를 하여 철저한 방역에 나서고 있다. 치료 방법이 없고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감염된 동물은 땅속 깊이 파묻고, 방어 장벽을 설치하여 이동을 제한하는 한편 추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방역 활동을 엄격히 하게 된다.

이 질병은 애초에 조류에게서만 문제가 됐었으나 세계적으로 사람에게서도 발생하고 있다. 사람에게 전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최초로 보고된 것은 97년에 홍콩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이다. 이 질병에 걸린 생닭을 취급하던 사람의 기관지를 통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먹어서 전염된 경우는 없으며 계란을 통한 전염은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감염된 닭은 대부분 죽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닭의 경우는 조류독감과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요리 과정을 통한 전염도 없으므로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되어 항원이 뒤바뀌게 되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한 독감이 된다. 그렇지만 사람의 몸 속에서 변이가 이뤄지는 ‘소(小)변이’일 경우에는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다만,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다른 동물의 몸 속에서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섞여 재조합된다면 엉청난 파괴력을 지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대(大)변이’가 있게 되면 사람은 이런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없어 질병의 방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중국 광둥(廣東)성 동물시장의 사향고양이에게서 사스의 원인이 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된 바 있다. 이 동물은 이전에 조류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포유동물이나 조류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지만 이 재조합된 바이러스는 사람도 감염시킬 수 있다.

지난해 중국 지역에서 발병한 사스가 확산되면서 전세계가 떨고 있을 때, 집에서 앵무새를 키우던 사람들이 사스 감염 가능성에 대해 문의해 왔고, 더러는 멀리서 앵무새를 직접 안고 진료를 받으러 오기도 했다.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가 사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으며 매개가 될 수 있는 동물도 없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상담해 주었다.

일명 청거북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종종 청거북을 통해 살모넬라균이 사람에게 옮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문의해 오기도 한다. 사람에게는 식중독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질병 외에도 결핵, 탄저, 브루셀라, 톡소플라즈마 등의 질병이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전염이 될 수도 있는 질병이다. 그러나 철저한 예방과 개인 위생 관리 덕에 현재 이런 질병의 발생은 없다.

한편, 동물들의 전염성 질병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치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예방을 할 수 있는 바이러스성 질병은 많다. 애완동물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견의 질병만 하더라도 예방 가능한 질병은 많은데 백신 접종률은 현저히 낮다. 국내에서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 광견병도 방어항체 수준인 70% 접종률의 절반도 못 되는 30%대에 불과하다.

이종(異種)간 질병의 매개 가능성이 있다면, 예방 가능한 질병은 철저히 예방 접종을 하여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것만이 변이 질병의 가능성을 줄이는 길이다.

권태억 / 서울 한성동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