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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수의사 소개

2014.11.26 12:25

vetopia 조회 수:1651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진로 찾아가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직업 현장을 찾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또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 어떤 길이 있는지 등 구체적인 정보를 중고생 눈높이에 맞춰 알려드립니다. 19회는 수의사입니다.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을 수의사라고 한다. 이는 사실 절반만 맞는 얘기다. 수의사의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다. 동물병원에서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돌보는 수의사는 물론 검역 등 공중보건 분야에서 일하거나 축산정책을 짜고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는 수의사도 많다. 동물을 살리기 위해 때론 동물을 죽여야 하고, 돼지우리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수의사의 세계를 소개한다.


동물병원 수의사는 일부

수의학과를 졸업한 후 가장 많이 택하는 직업은 역시 임상 수의사다. 반려동물인 개나 고양이가 아플 때 데려가는 동물병원 수의사를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임상 수의사 분야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뉜다. 개·고양이·토끼·새 같은 소동물(반려동물)을 돌보는 수의사와 소·말·돼지 같은 대동물(산업동물)을 주로 진료하는 수의사, 물고기 등을 다루는 수생 수의사, 사자·하마 같은 동물원 특수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 등이다.

 물론 수의과대학에서 모든 동물에 대한 기초는 배우지만 졸업 후 현장경험을 쌓으면서 전문성을 갖춰 세분화한 진료를 한다.


 예컨대 이리온 동물병원 문재봉(46) 대표원장은 반려동물 전문 수의사다. 반면 한성동물병원 권태억(53) 원장은 특수동물 수의사다. 뱀·악어·코브라·꿀벌 같은 특수동물을 주로 본다는 얘기다. 권 원장은 “모든 수의사가 동물에 대한 기본정보를 알고 있지만 평소 전혀 다루지 않는 동물이라면 상세히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반려동물 수의사는 소를 치료하지 못하고 야생동물 수의사는 가축용 돼지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고슴도치 같은 특수동물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례가 늘면서 동물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인근 동물병원을 찾아 진료를 요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특수동물을 반려동물 전문 동물병원에 데려가봐야 제대로 된 처치를 받을 수 없다. 수의사가 귀찮아서 진료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전문성이 없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 원장은 “수천수만 종의 동물 특성을 모두 알 수 없기에 전문분야를 나누는 것”이라며 “아나콘다에 물리거나 악어에 쫓기면서 매일 씨름하는 게 특수동물 수의사”라고 했다.

전문의 제도 아직 없어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로스엔젤레스 팜데일 동물병원에서 진료중인 권태선(33) 수의사는 한국 수의사 면허증과 미국 수의사 면허증을 둘 다 취득했다. 권 수의사는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로 전문의 제도를 꼽았다. 미국은 동물병원도 사람이 가는 병원과 마찬가지로 세분화한 전문의 제도를 두고 있다. 해당 과에서 인턴·레지던트 수련을 받아 전문의 자격을 딴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은 수의사 면허를 딴 뒤 스스로 관심 분야를 더 파고 들어 전문성을 쌓을 뿐 국가가 공인하는 전문의 자격증은 없다. 일부 규모가 큰 개인병원에서 안과·치과·정형외과·영상의학과 등으로 나눠 과별 특수 진료를 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임의로 나눈 것일 뿐이다.


군대에도 수의사가?

동물을 진료하는 임상 수의사 수가 가장 많기는 하지만 공무원으로 들어가 검역이나 공중보건 업무를 하거나 학교나 연구소에서 바이러스·미생물 관련 연구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군의관처럼 수의장교로 군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제1군수지원사령부 식품검사 대장 정해도(45) 중령도 그중 한 사람이다. 수의장교는 군견·군마 같은 군용 동물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장병들이 먹는 식품이나 수질을 검사하고, 전염병 우려가 있을 때 방역 등을 도맡아 동물과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수공통전염병을 예방한다. 정 중령은 “수의 장교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역할은 많다”며 “장병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98개 항목의 위생 점검을 하는 것도 수의 장교 몫”이라고 소개했다. 수의장교 임무 중 해외파병 업무도 있다. 정 중령 역시 1994년 아프리카 서부 사하라에 파병된 우리 군을 따라가 식품검사와 수질검사, 해충방역 업무를 수행했다.

 수의장교가 되려면 수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수의병 모집 기간에 지원해 건강검진(신체검사)과 체력검사에 합격해야 한다. 매년 30~35명을 선발한다. 교육 후 중위로 임관하는데 36개월 근무가 기본이다. 정 중령은 “수의장교는 일반 수의사와 달리 국가에 봉사하는 군인”이라며 “동물을 사랑하고 공중보건에 기여하려는 마음은 물론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육군에는 107명의 수의장교가 있다. 공군은 17명, 해군은 12명의 수의장교가 있다.

인간 삶과 직접적 연관

임상 수의사 다음으로 많이 택하는 직업은 공무원이다. 검역이나 방역, 축산정책을 담당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서울지역본부 축산물위생검역과 강은경(34) 주무관은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동·축산물 검역을 비롯해 국내 가축 관련 질병방역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며 “도축 관련 위생관리, 동물약품관리, 동물복지, 질병진단 연구 개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업무를 한다”고 말했다. 강 주무관은 반려동물에서 육가공 식품까지 국내로 들어오는 동물과 관련 제품을 검역한다. 구제역이나 AI(조류인플루엔자) 같은 가축 전염병의 국내 유입을 막는 중요한 일이다. 또 수출하는 육류의 도축과 가공, 포장을 거쳐 배에 실릴 때까지 검사하고 확인하는 역할도 한다. 그는 “축산물이라고 하면 정육만 떠올리지만 축산물을 포함한 라면이나 과자, 아이스크림 등도 수출검역 대상”이라며 “품목이 다양하고 국가별로 요구하는 조건도 달라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상담도 한다”고 덧붙였다.

줄기세포 연구도유전자 변형이나 줄기세포 등 생명과학 분야도 수의사의 연구 영역이다. 국가석학(국가에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 높은 우수 연구자를 뽑아 지원)인 UNIST(Ulsan National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울산과학기술대학교) 생명과학부 서판길(62) 교수가 대표적이다. 서 교수는 “수의학자는 인간과 동물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생리학 등 기초과학에서 질환 관련 임상의학에까지 두루 이해하고 있어 다른 분야 학자보다 생명과학 연구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세포나 동물, 심지어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긴장과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그는 “세포나 동물은 환경에 쉽게 죽거나 변화하기 때문에 성실성과 세심함, 끈기와 열정이 생명과학자의 최고 덕목”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 논문은 1988년에 이미 생명과학 분야의 권위지 셀(Cell)에 등재됐다. 그는 “암·간질 등 난치병 원인을 찾아 조기에 발견하고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이처럼 수의학자는 동물의 영역을 넘어 인류의 건강한 삶을 찾는 역할까지 한다”고 했다.


동물 좋아하는 것과 수의사 자질은 별개


건대 수의학과 본과 4학년 손지희(30)씨는 수의학도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아주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손씨는 “수의학을 전공하면 닭장에 들어가 닭똥냄새 맡고, 두 손에는 동물 뼈가 들려있고, 돼지 똥을 밟아 미끄러지는 일이 다반사”라며 “이런 궂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려면 동물을 구하겠다는 신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대 최양규 학과장은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단지 강아지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수의학과에 진학한다”며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과 동물을 살릴 수 있는 학문을 익히는 데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리온 문재봉 대표원장 역시 “기본적으로 동물을 좋아하기는 해야 하지만 수의사가 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렵다”며 “학과 선정에 앞서 동물병원이나 유기견 보호소 등에서 반드시 진로 체험을 해 보고 내가 수의사에 맞는지 조련사나 사육사 혹은 애견 미용사에 맞는지 고민해보고 도전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수요 늘어 전망 좋은 편


이리온 문재봉 대표원장은 “요즘은 펫푸어(돈 없어 굶으면서도 반려동물은 유기농 사료 먹이는 사람)까지 등장 할 정도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 수의사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며 “게다가 이구아나 같은 이색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많아 특수동물 수의사 미래도 밝다”고 말했다.

 공무원이나 학계로 가는 통로로서도 수의사 전망은 밝은 편이다. 검역 관련 등 전문분야 공무원 공채는 수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사람만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무원 진입에 유리하다.

 최근엔 생명공학 같은 연구분야도 임상 수의사 못지 않게 인기있다. UNIST 서 교수는 “30년 전만 해도 생명과학자 수가 한 손에 꼽힐 만큼 적었지만 지금은 점점 사람이 몰리고 있다”며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김소엽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